미국 정부의 한반도에 관한 용어 택용에 관하여

- Korean Question 과 Six-party Talks 소고 -

 

 

1948년 미국 정부는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 시키면서, 그 전에 서울에서

개최된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남북통일 문제를 Korean

Question (한국 문제) 이라는 이름을 붙여 유엔총회에 이관 상정하는

방식으로, 미국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 하였다. 미국이 이러한 소극적

자세로 전환하게된 배경에 대하여서는, 구체적 언급을 생략하지만, 그때까지

한반도 남북과 그 주변에서 전개된 상황에 다소라도 관심있게 관찰한

국민들에게 결코 난해한 국면은 아니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마치 자신의 외교적 대승리 인양 호도하고 유엔의 기능을

과장하여 선전했던 행태를 목격했던 국민들이 지금도 많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그후 2년도 못되어 6.25 동란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문제는 이 Korean Question 이라는 명칭인데, 예컨대 Question of Korean

Unification 라고하면 분명 할텐데 왜 마치 한국 자체가 문제국인 것처럼

들리는 "한국 문제" 라는 용어를 구태여 택용 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용어의 내용에 까지 관심이 가는 이들에게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요컨대 당시의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통일문제 자체 보다는 그

보다 더 저변에 있는 한반도 특히 남한내에서의 지난 몇년간의 군정 경험에서

느끼게 된 미국 정부의 좌절감과 실망감을 그러한 용어로 표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까지도 한반도내에서 이 용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Korean Question (한국 문제) 라는 용어는 이제

고유명사처럼 고착된 감이 있다.

 

다음은 지난 2003년 부터 한반도에서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온 국제

회의인 6자회담 (Six-party Talks) 의 용어 문제인데, 미국 정부는 예컨대

Six-party Conference 나 Six-party Meetings 라고 하지않고 구태여 Six-party

Talks 라고 하였는가? 한국어로는 어느 것이나 "회담" 이라고 번역 되겠지만

회담 중에서도 왜 마치 잡담인것 처럼 들리는 "Talks" 라는 어휘를 택하여,

이 회담이 실제에 있어서 반영구적 이지역 회의체제 또는 반영구 기구로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북핵문제 만을위한 일시적 임시기구 처럼

한국내의 무비판적이고 추수적인 식자층의 엉뚱한 오해를 촉발하게 하고

있는가? (이른바 이들 식자층에는 국내 유력 신문사의 논설위원들도

포함된다.)

 

이제 용어를 떠나 실질적 내용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6자 회담은, 미국 정부가

세계적인 핵무기 비확산 (NPT) 정책의 일환으로, 북한이 1960년대 부터

시작하여 현재도 개발중인 핵문제에 관하여, 북한이 최근에 끈덕지게

요구해온 북.미간의 양자대화 대신에, 이지역의 주요 관심국인 남한.중.일.러

4개국을 포함한 6자간의 다자 대화를 제안하고 관계국이 여기에 응하여,

시작된 것이다. 주제 자체가 국제적으로나 각국의 국내 관심사로서 막중한

"핵보유 및 핵확산 방지" 문제이다. 인류의 생존과 안전 나아가서 세계 평화

유지에 이보다 더 현실적 위협이 되는 문제가 더 있겠는가? 게다가 일본은

6자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리자 마자 재빨리 "일본인 납북 문제" 를 추가의제로

정식 상정 하였고, 현재 아베 신정부는 이를 본격적으로 다시 다루겠다고

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2005년 9월에는 6자가 만장일치로 동아시아 안보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도 다룰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동아시아 지역으로서 볼 때, 6자 회담은, 미국의 처음 소집 명분과는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이 지역에 유일한 지역 안보와 평화 수호에 관한 국제적 정부간

공식 집회가 되었다. 이는 이 주제에 관하여 이미 그야말로 잡다할 정도로 많은

국제기구와 회의가 있는 서유럽과 대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어느 나라도 이에 대한 큰 기대가 표출되지않고 있는 것은 주로 중.일.러 3국이

모두 세계 대국들이어서 집단 안보의 필요성을 서유럽 처럼 심각하게 느낄

만한 상황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이들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미.중.러 가 어떤 나라인가? 이들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유엔

안보리) 에서 거부권(Veto Power) 을 가지고 있는 미.중.러.영.불 5개 상임

이사국 중의 3자이다. 미국은 이중에 영.불 이 제외되어 있는 6자 회담에서는

미국 뿐 아니라 이들 우방의 거부권도 겸하여 행사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3개의

거부권이 있다고 볼수있다.

 

따라서 6자 회담에서 어떤 결의가 있게 되면, 유엔 총회는 물론 유엔

안보리에서도 자동적으로 통과 된 것이나 다름 없다. 일본은 제2차대전

패전국으로서 이점에 관한한 2류 국가이다. 우리 나라는 현재 유엔총회

회원국 이지만,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 (5개국) 도 비상임

이사국 (10개국) 도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6자 회담에는 거부권 제도가

없고, 회담 자체에 관한 한 6자는 균등하게 6분지1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회원국이다. 이처럼 한국이 이들 4대 강국과 대등한 자격으로 이렇게

중요한 국제 회의에 참가 하게된 것은 유사이래 처음있는 획기적 사실이다.

 

이제 한반도의 입장에서 6자 회담을 보기로한다. 다른 기회에 간단히 언급한

바 있지만, 한반도는 세계의 몇 안되는 화약고 중 하나로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지금 한반도는 100년전의 한반도 당시 보다도 국제

정치적으로 더 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그 때는 한반도가 분열되어 있지

않았고, 북핵문제 같은 것도 없었다. 사대주의 사상은 그 때보다 더 강한

뿌리를 과시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먹고 사는데 바쁘다고 하면서 개인문제

이외에는 무관심하다. 어떻게 든지 돈 벌어서 호의호식 하는데 몰두하고,

기껏해야 "가문의 영광" 정도로 사고의 영역이 넓어질 정도다. 이처럼 돈을

위해 사는지 살기위해 돈을 버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의 행태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부정부패, 도덕적 해이 등 온갖

반사회적 현상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혹자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 중의 한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모태가

되는 사회가 이처럼 혼탁할 때 그 지도자라고 하여 모태로 부터 초연할 수

있겠는가? 8.15 건국이래 국민 대다수가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실망할 일은 아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를 기를 수 없는 사회라면, 이제는 사회가 그 대신 나서야한다.

사회에 의존할 수 없다면 그 때에는 국민이 나설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정신이고 의지이다. 안된다고 자포자기 하고

남에게 핑게를 돌릴 일이 아니다. 나자신 부터 "할수있다" 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 자세를 택하는 것이 근원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그러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감추지 말자. 우리 나라가 문제국가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시라도 빨리 남북이 세계에 떳떳하게 자유.민주.평화의 3대 원칙에

입각하여 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남북이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양쪽모두 지금처럼 부정부패가 심하게 된 것은 나라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

이라고도 할수있다. 따라서 통일이되면 부정부패도 많이 줄어들지 모른다.

 

분단 60여년의 오늘날 남북간의 합의 만으로 통일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지금은 이 사실을 세계에 숨길 때가 아니라 광고할 때다. 한반도 문제 때문에

6자 회담이 열려있다. 이 때에 우리 모두의 바램인 통일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어데다 호소 하겠다는 것인가? 이 기회를 놓지는 것은 천재일우의

호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남의 눈치만 보면서 주저할 때는 지났다. 국민이

일어서야한다. 정부와 정치가, 기성 사회가 할수 없다면 뜻있는 (눈을 부릅뜬)

국민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서라도 일어서야 한다. 그리하여

미국 같은 나라들이 우리 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자치 능력을 비하하는

뉴앙스를 풍기는 "Korean Question", "Six-party talks" 같은 용어를 다시는 쓸

생각이 안나게 만들어야 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