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을 위한 천시, 지리, 인화에 관하여

 

 

천시(天時)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오늘날 까지를 눈여겨 볼 때 한가지 현저한 사실은

그동안에 인위적으로 분단 되었던 모든 나라들 특히 베트남, 예멘, 독일

등이 이미 10 여년 전에 통일 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 한반도 만이 아직도

분열을 다시 봉합하지 못하고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할 우리 남한은 내분에

휩싸인채로 갈팡질팡정책, 막연한 행운기대심리, 국민적 방향감각 상실

등으로 아직도 무력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큰 일을 성취하려면

무엇보다도 천시, 지리, 인화를 얻어야 한다고 동아시아의 선현들은 가르쳐

왔다. 순서에 따라 천시를 우선 생각해 보겠다.

 

원시 시대에 해와 달이 인류의 하나님이었다면 우주 삼라 만상의 하나님은

시간이라고 할수있다. 해와 달도 시간에 이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이처럼 중요하다는 말이다. 천시는 더욱 그렇다. 한반도 통일의

천시를 생각해 본다면, 그때는 언제인것인가 ? 이에대한 즉답을 보류하는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잠시 그 변화상을

거시적으로 회고해 보기로 한다.

 

미국

 

제1차와 제2차 양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은 대외적 국력 신장에 있어서

행운의 기회를 잡은 후 오늘날 국력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영향력을

세계 도처에서 행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건국 3백년 미만인 미국의 대외 정책을 회고해 본다면, 미국은

고립주의와 팽창주의라고 하는 두 대외정책 기조 사이에서 시계추 처럼

오락가락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몬로 독트린의 경우, 서유럽 선진국

들이 경쟁적으로 중남미 등 남북미주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게 되자

미국은 남북 미주 대륙에 대한 영도권을 주장하고 이들 외국들에게 중남미

제국에 대한 간섭을 삼가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대신 미국으로서도

외국 특히 서유럽 제국간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바 있었다.

미국의 이러한 대외정책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이 뒤늦게 참전하게

됨에 따라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국민 중에는

지금도 팽창정책 보다도 고립정책을 선호하는 여론이 유력하게 상존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전쟁으로 국력이 피폐된 다른 세계 열강에

비하여 미국이 전쟁 특수 등으로 축적한 힘은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지난 60 여년간에 유럽 선진국들은 나름대로 전후처리 문제를

해결하고    EU (유럽연합)   등과 같은 형태로 결속하여 과거 식민지주의

시대에 구가하였던 세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부분적이나마 회복하고자

모색하고 있다.

 

이밖에 중국은 과거의 "종이 호랑이" 라는 불명예를 탈피하고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세력에 2030년대에는 1대1로 비견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국내외 적으로 그 기반 구축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대영제국의

오랜 지배를 받은바 있는 인도도 그 거대한 인적자원을 앞세워 국력 신장에

매진 중이고,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도 흔히 몇마리의 "용" 으로 묘사되어온

바와같이 신흥개발 국가로서 주목을 받고있다. 우리의 이웃인 일본과 함께

이들 여러 나라들이 모두 동아시아에 있거나 또는 그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세계 전체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의 상대적 비중을 높이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명서점설을 운운하는 일부 식자가 있어 왔는데, 이는 이러한

현상을 문명중심사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라고 하겠다.

 

요컨대 이러한 추세에 따라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은 근래에 상대적으로 감소

하고 있고, 이러한 감소 경향은 미국의 막강한 홍(정)보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의 대세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주도로 전개되어 왔고, 미국의 상기한 바 근래의 영향력

증대에도 불구하고, 단절없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대외적 영향력의

전성기라고 할 지난 60 여년간에도 능동적이라기 보다는 수동적 입장에서

세계도처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하여 일종의 경찰 또는 소방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금후에도 지구의 육지라고할

유라시아 대륙에 비하면 미국은 일본과 더불어 하나의 도서(섬)과 같은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동시에 미국은 남한에 점령군을 파견함으로써, 북한을

분할 점령한 소련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책임을 인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5년의 모스크바 3상회담의 한반도에 대한 결의가 실현되지 못하게

되자, 1948년 미국 정부는 남북통일 문제를 한국문제(Korean Question) 라는

이름으로 유엔에 이관 시켰다. 한반도 남반부에서의 미군정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한 다음, 당시 미국 국무장관 에치슨은 미국의 방위선을 일본열도, 대만,

필리핀 등을 잇는 서태평양 상의 일선 이라고 천명 함으로써 한반도를 이

방위선에서 제외하였다. 이 선언이 북한의 김일성 으로 하여금 한국전쟁

도발이라는 세기적 오판을 하도록 유인하게 된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은 또한 미국의 방위선이 금후에도 언제든지 한반도 이동으로 후퇴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사례 라고도 할수 있다.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제2의 에치슨 라인이 또다시 표면화될 가능성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대미관계를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번잡한 시장에 처음으로 나온 세살 먹은 어린이 처럼, 미국의 손을

놓으면 곧 큰일이나 날 것 처럼 겁내고 어쩔줄 모르는 자세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는 독일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아니다. 일본이 요사이

미국과 밀착하고 있다고해서 남한은 그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우리의

안보를 오히려 위태롭게하는 일이 될 수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 합당한 우리 자신의 독특한 대외 정책을 세워나가야

것이다.

 

조선 말기에 청국에 대한 사대관계를 고집한 이른바 위정척사파들의 옹고집

때문에, 일제의 침략을 이겨내지 못하여 조선이 자멸 하였던 100년 전을 심각

하게 회상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미국에 대한 제2의 위정척사파를 경계

하여야 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결코

과소평가 해서는 안될 우리나라 외교의 당면과제 라고 하겠다.

 

중국

 

현재의 중국은 무엇 보다도 청(淸) 왕조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할것이다. 지난

5천년 간의 중국 역사상 현재의 중국이 계승한 만큼의 광대한 영토를 확보한

왕조는 많지 않았고 또한 그러한 때가 있었더라도 일시적 이었다. 만주족의

영도로 건국한 청나라는, 갖가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중국이

오늘날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등 현 변방 영토 영유권을 합리화

하는데 필요한 영토적 전제 조건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소련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정치적으로 1당독재 체제를 견지 하면서도

경제발전을 위하여 서방 자본주의 경영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얼마동안

더 계속하게 될지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경제 발전에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 중 관계의 5천년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중원이

한반도의 주민들에게 이른바 "소중화"주의적 또는 기타 어떤 형태로든

사대주의적 대중국관을 뿌리 깊게 부식한 사실을 부인할수 없을 것이고,

한반도에 살고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고질적인 대중국관을 어떻게

극복할지는 아직도 많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할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관계를 전반적으로 종합해 볼때, 중국의 역대

정권은 한반도에 대하여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할수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중국은 그 무력이나 인구 면에서 상대적으로 약소하였던

이웃인 한반도를 결심 여하에 따라 병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른바 문화 정책을 선호하여 한반도의 실질적 독립을 인정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한반도와 중원간의 꾸준했던 인적 문화적 교류와

한반도측의 사대(교린) 정책이 다소간에 긍정적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식자들은 "동방예의지국" 이라는 명칭을 한반도 묘사에

흔히 사용 하였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한반도에 대한 호의와 존경의

표시라기 보다는 "조공을 잘 바치는 나라" 라는 뜻의 중국적 표현 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볼때 현재 미국이 세계 최강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볼때 미국 보다는 중국이 한반도에 대하여 더 밀도있는

관심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중공의 모택동은

1950년 한국 동란이 발발하자 건국한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어려운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의용군"을 파견하여 인해전술로 미군등 유엔군이

북한으로 부터 후퇴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중국은 5천년에 걸치는

한.중 관계를 항상 순치(입술과 혀)관계라고 말해왔다.

 

이제 지금까지의 한중 관계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이는 근원적으로

한반도의 분단에 기인하고 있는 현상이다. 요컨대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소련을 대신하여 북중방위조약으로 유사시 한반도 북반부를

강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6자회담에 우리 정부가

남북통일 문제를 오늘이라도 정식 의제로 상정하게 되면 국제 관례상 그러한

조약 관계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참가국들과 사전에 상호 협의함이 없이

중공군을 북한에 일방적으로 파견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즉각적으로

조성되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일본

 

유라시아 대륙의 부속 도서라고 할수있는 일본은 한때 한반도와 더불어

중국의 중원 정부에 조공을 바치고 중국의 책봉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면 중국 중심적 국제 의례상 일본은 한반도 보다 후순위에

처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또한 섬나라로서 대륙에서 격리된 지리적

이점을 인식하고 점차 중화권으로 부터 고립하고 차차 독립하는 자세를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대륙을 동경하게 되는 섬사람들의 본능적 특성에

따라 일본인들은 항상 제1차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그 활동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 경우 일본으로서 한반도는 이 유라시아 대륙의 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일본적 사고 방식이,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 되어온 상황에서, 점차

분수에 넘치는 과대 망상으로 확대되어 유라시아 대륙의 동방에 있는 한반도

와 중원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주변에까지 그들의 야심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 내의 상황을 볼 때 일제의 패망 이후에도 일본의

이러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고 반성하는 기미는 허약하다.

 

한반도의 역사 교과서는 사대교린(事大交隣) 이라하여 중국에 사대하는 한편

예컨대 일본과는 대등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명분상 한반도의

전통적 대외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의 교린정책은 실제에

있어서 일방적 한반도적 인식 또는 무사 안일 주의적 자위(自慰)에 그쳤을

뿐이다.

 

일본의 역대 정권은, 한반도가 중원에 사대하는 관행에 비추어, 일본도

한반도로부터 사대적 예우를 받는것을 당연시 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일

양국의 상호간에 대한 착시 현상을 중간에서 완화 또는 절충 시키는 역할을

한 때나마 맡고 나선 것이 대마도주이었던 것이다. 16세기 말의 임진왜란과

20세기초 일본의 한반도 불법 병합은, 대체로 평화적이었다고 할수있는

오랜 한일교류사에 있어서, 일본의 과대망상적이고 침략적인 대륙관과 한.중

양국의 수동 방관적 일본관 사이의 대결과 충돌의 대표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45년 일본 천왕의 대연합국 무조건 항복과 일본제국주의

세력의 부인할 수 없는 패망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명치유신 이래의

범죄적 대륙 침략에 대한 과오를 충분히 반성 하지 않고있다.

 

특히 근래에 와서 일본 정계가 우경화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밀착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면서 재무장을 서두르고 있는 현상은 일본의 끈질긴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집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수있다. 아무튼 한반도로서는 금후

일본 열도의 이러한 침략주의적 성향을 경계 하면서, 최근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가운데, 종래와 같은 일본에 대한 소극적 자세를 탈피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재해예방적 자세를 정립하고 이를 실천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와 일본 열도간에 쌓인 구원을 극복 하는데

꾸준히 노력하면서, 대륙 국가로서 한반도의 강점과 도서 국가로서 일본의

약점 등을 잘 활용하여 상호간의 실익을 도모하는 우호적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

 

러시아가 유사이래 처음으로 한반도와 접경하게 된것은 1860년 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국과 사전협의 없이, 러시아 제국과 북경 조약을 체결하여

한반도와 접경한 연해주를 할양하였다. 연해주는 간도 지역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고 그곳에 살던 한반도인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기도 하였던

곳이었다. 그당시 영국등 서구 선진국들은 주로 해양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진출하고 있었던 반면, 러시아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 북부의 대초원 루트를

따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꾸준히 그들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1894~5년 청일전쟁후 양국간의 조약으로 일본이 중국 동북 지방의 요동

반도를 할양받게 되자, 러시아는 독일과 불란서를 동원하여 이른바 3국

간섭을 주도하여, 일본에 할양키로 되었던 요동 반도를 청국에 강제로 반환

시켰다. 이와 동시에 그 여세를 몰아 러시아는 한반도에 친러 정권 수립을

획책하였고 이에 반발한 일제의 비인도적 민비 암살 소각 사건(乙未事變)에

이어, 고종으로 하여금 마침내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 동안이나

정사를 보게하는 전대미문의 아관파천을 유도하였다.

 

청일전쟁에 승리하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반도를 단숨에 제압할 듯이

기세 등등 하였으나, 예상치 못했던 러시아등의 3국간섭을 받고나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키워나갔다. 한편 러시아 제국은 중국의 동북지방

(구 만주)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부동항 확보와 각종 이권을 추구 하였다.

1904~5년 간의 러일전쟁은 근본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던 러.일 양 침략세력간의 무력충돌 이었고, 일제는 이 전쟁에서

가까스로 나마 승리함으로써, 한반도 병탄의 숙원을 달성할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일제가 이어 을사늑약으로 한반도를 강점하게 된

배후에는 국제정치적으로 영국과 미국의 암묵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

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비록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사실이라 하드라도, 그 당시에 청국과

러시아로서는 국내적으로 일본과의 전쟁에 국력을 전반적으로 동원할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았고, 당시의 일본처럼 전쟁에 대한 거국적 관심도 없었던

사실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17년에 러시아 제국이 공산화 되자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적 풍조가 세계적

으로 풍미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일제의 강점 하에 있던 한반도를 수복

하려고 활동하고 있던 한국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도 공산(사회)주의적

사상이 광범위하게 침투하는 현상이 조성되었다. 1945년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동시에 한반도는 해방되었지만, 우리민족에게는 뜻하지 않게 당시

대표적 연합국 이었던 미국과 소련간의 합의로 38선이 획정되고, 한반도의

남과 북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의 군정 하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1945년

8월15일을 해방 또는 광복의 날로 알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해 9월

9일에, 한국측 대표는 제외된 채, 일본 총독과 미점령군 사령관간에 남한에

대한 통치권이양 문서가 서명된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때부터 한국

동란과 소련의 해체시까지 소련(지금의 러시아)은 한반도 북반부에 대하여

중공에 우선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현재의 북한 정권은 처음부터 소련

당국의 김일성 비호로 태동하기 시작하였던 것이고, 오늘날 북한 정권은

외형상 노동당 일당 독재의 공산주의적 허울을 쓰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

김일성 부터 시작한 시대착오적 세습 왕조에 불과하고 주민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고 있는 병영국가임에 변함이 없다.

 

한국 동란이후 남쪽의 한미 방위조약에 대응하여 체결된 북소간의 상호 방위

조약이 소련의 해체와 러시아의 탄생을 계기로 상호협력 협정으로 대채됨에

따라, 또한 러시아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도입과 구체제에 대한 구조 조정으로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우월적 지위는 후퇴하였다. 그대신 소위 항미원조

전쟁 (한국동란)에 참가한 중국이 러시아를 가름하여 대북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북소 방위조약이 폐기된 후에도 당시에 쌍벽을 이루었던

북중 방위 조약의 효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북한.중국.러시아 간의 북방 3각 관계의 그간의 변화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아직도 국내적 경제적 구조 조정에 몰두하는 남어지, 한반도 등에

대한 대외 관계에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소련과 같이 커다란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와 러시아는 국경을 접하고

있고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광대한 지역과 현재 1억4천 만명의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이웃임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북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 미국이 한미 방위조약으로 휴전선 까지의

남한에 대한 방위에 우리와 동참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이 북중 방위

조약으로 휴전선 까지의 북한 방위를 담당하고 있어서 상호 대결 구도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로서는 현재 미국과 중국이 4강중에서도

가중 중요한 두나라 라고 하겠다. 한반도주변 4강과 남북한 6자간의 집단안전

보장 조약안은, 이러한 양자 조약에 의한 미.중 간의 현재와 같은 대결 구도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과 중국을 같은 편에 서서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힘을 합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러시아도 한반도에

관한 한 남북한과 미.중 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거중 조정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이웃 나라들 이라고 하겠다.

 

 

이제 한반도 주변 4강의 변화와 현황을 개관 하였으므로 천시(天時)는

언제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한반도와 유사하게 제2차 세계대전후 분단의 곤경에 처하였던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오스트리아는 재통일에 10년 걸렸고, 독일은 40여년 결렸다.

일본 열도가 소련의 주장에 따라 미.소 간에 분단 되었다고 가정할때, 일본

국민은 그러한 분단 상태를 10년 이상 감내하지 못하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분단 60년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10 여년전

독일이 통일하던 시기에 우리에게도 통일의 기회가 왔었는데 우리의 준비

부족으로 그 기회를 놓지고 말았다. 통일이 늦어지면 늦어 질수록 한반도와

한민족의 장래에 피해가 있을 지언정 이득은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통일은 커녕 한반도를 남북이 반씩 분점하고 있는 현재의 반독립적 상황

마저도 과거 일제때 처럼 외세로 인해 상실하는 비운을 또다시 맞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1945년의 해방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날 갑자기 왔었다고

하면서 통일도 그렇게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한층더 구체적으로 지금부터 3년 이내에 통일이 온다고 주장 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통일이, 김정일의 반대, 주변4강간의 이해관계의 불일치 등을

이유로, 가능하지도 않고, 통일이 되면 남한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바람직

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정감록 같은 도참

사상이나 신앙철학에 젖어있는 사람들 중에는, 팔짱을 낀 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다가 장래의 어느 시기에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할때, 그 때가서

그 통일 시기를 이미 정확히 예언 하였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시기에 관한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일이 이미 너무 많이

늦었다고 판단하며, 금후의 통일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통일의 천시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순리에 따라 7천8백만 우리

민족이 합심협력 하면, 6자회담 회원국은 모두 우리의 주장에 결코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6자간 조약에 합의하는 때부터 라고 하겠다. 유엔

총회에 아직도 미결의제로 남아있는 "한국문제" 라는 의제는 한국 자체가

문제국 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반도가 세계대전을 촉발할수 있는

화약고라는 말이다. 한반도에서 이 화약고를 제거하고 영원한 평화 안보

체제를 구축 하는것, 그 것이야 말로 통일의 진정한 시작이고 이 시작이

최대한 빠른때가 곧 천시인 것이다.

 

우리가 작년 10월 25일 부터 시작한 국내외 국민 천만명이상 서명운동에

성공하고, 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따라 국회가 입법화하게 되면, 우리 정부는

지체없이 남북통일 문제를 6자 회담에 정식 의제로 상정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6자회담 정회원국의 당연한 권리로서 이러한 의제 상정의 용단을

내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그때부터 늦어도 5년 이내에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형태로, 전쟁하지 않고, 평화로이 또한 북한측으로 부터 있을수 있는

어떠한 반대라도 능히 극복하는 가운데, 정정당당하게 4강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민족적 숙원인 통일을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리(地利)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가 한반도라는 지리적 불이익 때문에

수난을 당하였다고 한다. 한반도 북쪽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육속하고 있어서

대륙의 강대한 세력에 밀려 백두산 이북의 광활한 땅을 잃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리(地理)는 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칼은 그것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로울수도 있고 해로울수도 있는 것이다. 칼

그 자체는 항상 가치 중립적 이라는 말이다. 일부 논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한반도 지형이 우리의 역사

발전에 불리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살아온 사람들이 이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을 유리하게 활용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도처의 지형을 그 특징에 따라 단순히 요약해 보면 대륙.반도.도서(섬)의

세가지로 구분할수 있다. 이 세가지 여건은 그 나름대로 각각 여러가지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한반도는

바다와 육지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대륙국과 도서국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동시에 누릴수 있는 이점이 있다. 몽골과 같이 대륙에 둘러싸인 나라는 국토

방위의 어려움 이외에도 무역에 있어서 외국의 항구를 이용해야 하는데서

오는 번잡한 절차와 경비문제 등이 따른다. 일본과 같은 도서 국가는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서 다른 나라로 부터 고립되기 쉬운 단점이 있다.

 

국제정치의 현실과 관련시켜 한반도의 이점을 열거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다만 이러한 이점은 우리가 잘 이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잘못

이용하게 되면 오히려 불리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 해야 할 것이다.

첫째 현재 한반도는 북쪽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어서 우리나라가

비록 상대적으로 약소국 이기는하나, 이들 두나라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어느 다른 접경 국가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둘째 바다 건너 이웃에 있는 일본의 경우 한반도가 일본인들의 첫번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시발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넘어에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에 못지않게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일본에게 중요하게

된다. 구체적 예를들면, 일본의 대외정책 실무책임 부서인 일본 외무성내의

제1국 제1과는 아시아국 북동아시아과이며 이 부서의 국, 과에서 한반도

문제를 우선적으로 관장하고 있다. 외무성 직제상 아시아국 북동

아시아과는 가장 중요한 국과로 공인된지 오래 되었다는 말이다. 그

자연스러운 연장선 상에서, 주일 한국 대사관도 상대적으로 약소국의 외교

대표기관 이지만, 재일 외교단에 있어서 미국.중국.러시아 3강의 대표

기관과 비견할 만큼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셋째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육속되어 있기 때문에, 또한 유라시아 대륙은

세계사를 선도하는 세계적 대륙이고 기타 대륙은 이 대륙에 비하면 모두

도서라고 할수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다른 나라는

한반도에 대하여 다른 대륙에 있는 나라들에 비하여 높은 친근감을 가지고

있고, 문명 교류사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언어적 측면에서 볼때 유라시아 대륙에는, 아직 연구를 더

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말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언어가

필랜드, 에스토니아, 헝가리,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만주(족), 일본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나마 서울에서 유라시아 횡단철도 이용문제 등이

논의되는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 때문 이라고 하겠다.

 

한반도 통일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불리하다는 주장 따위는 상론할 가치조차

없는 논의다. 민족적 숙원이며 당면한 최대 과제인 남북통일 문제는 후천

개벽의 문제이며 구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남한

국민들이 일부 언론의 이러한 반통일적 주장에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는

실정이므로 이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 하고자 한다. 통일은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뜻이 있으므로 이러한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여기에서 반론하는 것이

무의미 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남북통일과 같은 민족적 성업을 숫자상의

계산으로 유불리를 논하고자 하는 발상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남북

통일은 우리의 선각자들의 한결같은 숙원이며 당연히 실현하여야 할 우리

민족의 최대 당면과제에 다름 아니다.

 

백보 양보하여 숫자상으로 보더라도 통일이 되면 현재의 남한면적 이상의

실지가 회수되고 2천3백만명이 넘는 동포가 합류하게 된다. 북한은 경제적

으로 대단한 저개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남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새로운

자본 투자의 대상이 되고, 개발에 필요한 선진기술 인력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남한의 인력이 크게 진출할수 있는 대상 지역이 된다. 남한의 좁은

땅에 4천8백만이나 되는 국민이 살고 있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하여

통일을 늦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심하게 말하면 굶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을

촉진하게 되면 훨씬 더 먹고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는 말이다.

 

통일된 뒤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은 결코 낭비가 아니며 북한지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는 남한에서 노동력과 자본이 북한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남한에게 손해가 되는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한반도

전체의 균형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즉, 통일이 되면 경제적으로

남한에게 손해라는 따위의 주장은 반통일적 기득권 세력의 얄팍한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하드라도 노숙자나

극빈자층이 없는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나 후진지역 개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원인이 나라마다 각각 다를 뿐이다. 민족이동사적 입장에서

볼때에도 우리에게는 이 이상더 남쪽으로 지향할 여지가 없다. 오직 평화적

북진만이 있을 뿐이다.

 

통일은 실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 체제 구축의 전제 조건이 되는

동시에, 우리 민족의 대다수가 지난 수세기 동안에 한반도 내에서 조차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여 인구 과밀 상태를 조성하게된 근래의 상황을

반전시켜 북쪽으로 북쪽으로 우리의 관심을 되돌림으로써 한민족의 기상을

활발히 발양할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분단 상황은 국제적 대립의 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남, 북한.미.중.일.러 6자간의 집단안전보장(다자) 조약이 체결되어 효력이

발생하는 대로, 양자 조약인 한.미 방위조약과 북.중 방위조약을 동시에

철폐 하드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오히려 한층더

나아가 미.중 간의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 관계를 협조 관계로 탈 바꿈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동아시아 안보체제 구축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남북통일에 필수 불가결한 선행 요건은 미.중 간의 대립관계

해소이고 이지역 에서의 미.중 간의 협조체제 구축은 즉각적으로 한반도의

국제적 통일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1945년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한

것은 제1차적으로 외세 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적 통일은 결자해지

(結者解之)의 원칙에 합당한 것이고, 한반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이제이

(以夷制夷)에 해당된다. 통일 이후의 한반도로서는 인접한 미.중.일.러 4강

모두에 대하여 공평한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현재와 같은 국제적 장애요소를 탈피 내지 극복하게

되며, 남북관계를 순수한 한반도 내부 문제로 전환시킬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한반도 주변 4강과 절연하는 일은 있을수 없다. 국제화와

세계화가 촉진되고 있는 현재의 국제 상황에 순응하여, 오히려 이들 4강

모두의 지지를 받으면서, 남북간의 통일 과제를 해결하는 자세가 더욱 바람직

하다. 그리하여 한반도에 현존하는 두개의 정부를 하나로 만드는 국내 정치적

통일 문제와 지난 60년간 38선 또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해 온 남북의

군사력을 구조조정 통합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에 재배치 하는 동시에

현존하는 휴전선을 없애는 남북간의 군사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현안이 되어있는 남북간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문제는, 6자간

집단안전보장 조약, 하나의 정부, 그리고 하나의 군대가 이룩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인화(人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란 말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오자성어중

하나일 것이다. 이는 "인화만사성" (人和萬事成) 이라 해도 좋다. 이 어구를

국가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생각해 보면, 국민들이 분열적 성향을 극복하고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일치단결 하게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되새길수 있다. 오늘의 주제인 남북통일과제 처럼 우리 국민의 합심과 협력이

가장 강력히 또한 시급히 요청되는 분야는 없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 가능성에 관하여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조정에 보고 하였고, 당시 조정에서 유력 하였던 세력이 김부사의 낙관론에

동조하여 대비를 소홀히 한 결과, 조선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라는

국가적 대참사에 희생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또한 그 보다 앞서 이율곡은

그러한 재난에 대비한 10만 양병론을 주장 하였으나, 무사안일에 젖어 있던

당시의 조정은 이를 경청하지 않았고 그 결과 왜군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엄청난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이율곡 같은 사람이 필요한

때다. 왜냐하면 그는 나라를 보존하고 중흥하는 방안을 미리 제시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지난 역사가 우리 국민에게 주고 있는 장래에 대한 교훈은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처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작금의 행태를 보면, 우리 국민이 과연 이러한

교훈에서 어느정도 깨우침을 받고 있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시세의

거대한 변동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매우 구태의연한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어 대단히 안타까운 심정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긴급한 최대 과제는 남북통일 문제라 할수 있으므로

이 문제에 한정하여 인화에 관하여 다시한번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인화만사성 이라고 하지만 어떤 공통된 목적이 없는 인화란 있을수 없다.

인화가 잘못된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러한 인화는 없는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통일문제에 관하여 우리 국민간에 인화가 없다면, 우리

국민의 인화에 대한 욕구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러한 욕구를 집중 시킬수

있는 합당한 목표나 노선이 없기 때문에 인화를 할수없는 상황에 있다고 보는

판단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좀더 부연해 보기로 하자.

 

국토분단 이후의 상황을 회고해 볼때 분단극복과 관련하여 극에서 극에

이르는 다양한 해결책이 그 동안에 제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때로는 그러한 해결책이 옳은 것으로 판단하여 다소간에 그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인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만간에 그러한

해결책으로 통일을 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목적을 위한 인화 노력을 후회하게 되고, 결국 인화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고 만다.

 

이러한 사례가 비일비재 하게 되자, 이것이 총제적으로 혼란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올바른 목표나 해결책을 제시

하드라도 일단 의심부터 먼저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고 그밖에 부수적으로

여러가지 이해타산을 개입시켜 더욱 주저하게 된다. 그결과 올바른

해결책이나 노선에 대하여서 조차도 옥석구분이 잘안되어 초기부터 지지부진

하게 되고 이를 극복할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면 결국 시들고 마는것이 오히려

작금의 실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을 달성 하는데

있어서 전국민적 인화가 필수불가결 함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때 관심을

끈바 있는 슬로간(구호) 즉 흩어지면 망하고 뭉치면 산다는 말이 오늘날 처럼

절실한 때는 없다고 하겠다.

 

한반도를 전쟁하지않고 평화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그것도

최단시일 내에 통일 할수 있는 방안은 북핵 문제를 계기로 구성되어 있는

6자 회담에 우리 정부가 남북통일 문제를 정식 의제로 지체없이 상정하는

길(노선)이다. 지금과 같은 국내외 정세하에서,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

하지만, 가령 남북간에 통일에 관한 어떤 최종적 합의를 하였다 하드라도

그에 대하여 미국이 찬성하면 중국이 반대하고, 중국이 찬성하면 미국이

반대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약소국이고 또한

한반도 전체적으로 볼때에도 주변 4강중 어느 한 나라의 반대에 대하여서도

이를 극복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한반도를 위요한 미.중 간의 대립 관계를 협조 관계로 그판을 새로

짜야만 미.중 을 비롯하여 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이 일치하여 남북간의

자주적 합의에 반대하지 않고 찬성할수 있는 판도가 생긴다. 우리 남한은,

지금도 비록 상대적 약소국 이지만, 1945년 당시에 비하면 오늘날 막강한

국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국민의 일치된 지지를 받는 이러한 새판짜기

제안에 대하여 주변 4강은 결코 반대하거나 모른채 할수 없을 것이다. 이

새판짜기 제안이 곧 미.중.일.러.남.북 6자간의 집단안전보장 조약안이 되는

것이다. 이 조약에서 6자는 금후 다시는 한반도 에서 전쟁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동시에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상호간에 보장하는 것이다.

6자중 어느 나라도 한반도 문제로 가까운 장래에 또다시 전쟁 하기를 원하지

않고 있고 또한 어느 나라나 세계적 평화를 갈망하기 때문에 6자중 어느 한

나라도 이 제안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집단안전보장 조약이

발효하는 대로 머지않아 한반도의 영구적인 통일과 자주 독립이 실현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반도에서는 1945년에 있었던 미.소 양대 진영의 대립에 따라 수많은 월남

인파와 월북 인파간의 민족 이동이 있었고, 또한 신탁통치 문제와 관련하여

찬탁세력과 반탁세력 간의 극한적 대립투쟁 관계가 전개되었다. 1950년 에는

전대미문의 규모로 남북간에 동족 상잔의 6.25 동란이 3년간 이나 계속

되는등, 남과 북에 각각 수립된 정권과 그 관할 지역내의 동족들은 그 여파로

온갖 쓰라린 경험을 격어야 했다. 그에 따른 후유증과 원한은 지금 까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후유증이 일부 국민 사이에

통일을 반대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한반도의 남북에 각각 수립된 반쪽 정부간에도 계속해서 극한적 대립과

충돌이 비일비재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7.4공동성명 부터 시작된 남북

접촉 관계가 점차 소위 햇볕정책 등의 형태로 진전 되었다. 이과정이 과거의

극한 대립 관계를 협조 관계로 바꾸어 나가는데 기여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경제, 사회, 문화,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등 한정된 형태의 남북교류 만으로는 남북 통일 그 자체를 촉진할 수 없음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제는 6자간 집단안전 보장 조약 체결안과 같이 환골탈퇴

하는 적극적 이고 투명하며 새로운 통일방안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공명정대 하고 당당한 통일로선에 우리국민 천만명 이상의 절대적

지지라는 민주주의적 중량이 실리게 되면 우리 국회와 정부는 물론 주변

4강중 어느 나라도 우리 국민의 이러한 합당한 주장을 경청하고 이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가화만사성 이라 하였는데, 이 새로운

통일 로선에 국내외 국민이 찬성하고 협력하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의

날은 현재 일반적으로 예상되고 있는 시기보다 훨씬 빨리 우리앞에 하나의

현실로 다가올 것이 확실하다.

 

이상으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천시, 지리, 인화에 관하여 그대략을

검토해 보았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를 위한 6자간 집단안전보장 조약 체결로

완전히 자주 독립 되고 통일된 한반도에서 평화로이 살수있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온국민과 함께 충심으로 기원해 본다.

 

- 끝 -